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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15-12-22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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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90 이 노래 이 명반] 20. 모던포크의 노스탤지어, 박학기 1·2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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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유의 그림은 한국화다. 물감이 빈틈없이 담긴 서양화에 비해 한국화에는 여백이 많다. 막힘없는 부드러운 선, 억지스럽지 않은 붓놀림의 흔적과 여유 있고 넉넉한 느낌의 여백. 그래서 한국화를 보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박학기의 노래를 들으면 바로 그런 편안함이 느껴진다. 한줄 고운 선처럼 군더더기 없는 목소리에 실려 들려오는 그의 노래는 한국화의 여백처럼 부드럽고 평온했다. 
 
■ 가녀린 미성이 매력적인 한국 포크음악의 현재진행형
 
겨울이 시작되려는 어느 날, 라디오를 통해 그의 노래를 처음 들었다. 라디오에서 흐르는 맑고 가는 음성은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고 애절하게 이어졌다. 바로 그 곡이 '향기로운 추억'이다. 그의 대표곡이라 할 수 있는 '향기로운 추억'은 1989년에 발표한 1집에 실려 있다. 보사노바 풍에 실린 박학기의 곱고 가는 목소리는 시를 읊조리듯 부드럽게 들린다. 그의 미성은 너무나 순수했던 둘만의 시간을, 음악은 이젠 추억이 된 그리운 그 시절을 아련하게 담아낸다. 가사와 곡의 어울림이 좋아서일까. 유리상자, 성시경, 박혜경 등 맑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진 후배가수들이 리메이크를 많이 하고 있다.

보사노바 풍의 애절한 대표곡 '향기로운 추억'  특유의 가녀린 목소리·맑은 기타 선율 어울려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히트곡 '아름다운 세상'  아날로그적인 감성의 가사 따뜻한 위로 건네

■ 1집, 우리의 가슴을 가득 채우는 음악

1989년에 나온 박학기 1집에는 9곡이 실려 있고, 2곡은 박학기 본인이, 2곡은 조동익이, 그리고 5곡이 김현철이 만든 곡이다. 1집의 타이틀이기도 한 '이미 그댄'은 김현철이 작곡가로서 처음 선보인 곡으로, 조동익의 '향기로운 추억'과 함께 박학기의 대표곡으로 꼽힌다. 그의 맑은 음색과 함께 들리는 키보드와 기타 선율은 지나간 추억을 떠올리게 해 묘한 슬픔을 느끼게 한다. 

1집에 함께 실린 '여름을 지나는 바람'은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창가에서 듣기에 딱 어울리는 곡이다. 박학기의 가녀린 음색과 피아노 반주가 어우러져 나른한 오후의 따뜻한 햇볕을 받는 느낌이다. 드럼과 세션 연주로 시작되는 '아름다운 비밀'과 보사노바 리듬이 나른하게 다가오는 '나른한 오후', 락이 가미된 '북강변'도 실려있다. 여기에, 너무도 잔잔해 새벽에 들으면 좋을 '3:00 AM'과 '내 소중한 사람에게'도 역시 따뜻하고 섬세한 필치가 살아있는 박학기 만의 감성이 오롯이 담겨진 자작곡이다. 

아름다운 기억이든,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이든, 지나고 보면 다 추억이 된다. 그 기억들이 모두 향기롭진 않지만, 내가 남긴 자취이기에 돌아가고 싶어질 때가 있다. 박학기의 1집에 담긴 노래들이 바로 그런 곡들이다. 살며시 눈을 감으면 혼자만의 공간이 생긴다. 주변의 소음도 누군가의 모습도 없는 나만의 공간. 그곳에선 어떤 것이든 내 것을 채울 수 있다. 복잡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겐 특히나 그런 시공간이 필요하고, 또 항상 가능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가슴을 채우는 음악을 만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 이유로도 충분히 이 앨범의 가치는 필자에겐 충분하다.

■ '아름다운 세상' 음악교과서에 실려 '국민가요'로 

누군가의 마음을 채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음악은 가능하다. 그리고 박학기는 '아름다운 세상'이라는 곡으로 해낸다. 이 곡은 1990년에 나온 그의 2집에 실린 노래로, 아름다운 가사와 멜로디 때문에 중학교 음악교과서에 실리며 화제가 됐다. 특히 MBC TV 인기드라마였던 '고맙습니다'의 꼬마주인공 봄이(서신애)가 극 중에서 불러 다시 주목을 받았고, 급기야는 전국민 애니메이션 '뽀로로'에 사용되면서 어린 아이들까지 따라 부르는 '국민가요'가 됐다. 

그의 히트곡이기도 한 '아름다운 세상'에는 희망과 자연스러움, 따뜻함과 편안함이 배어있다. '폼잡지 않고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만든 곡이라 오래 갈 수 있었던 것 같다'는 그의 말처럼, 긍정적이고 희망 가득한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이 곡이 가장 박학기 다운 음악이 아닐까 싶다. 

1990년 11월에 발표한 2집에는 '아름다운 세상'을 포함해 총 8곡이 담겨 있다. 1집의 성공은 그가 이 앨범을 더욱 자신만만하게 구성할 수 있도록 했다. 1집의 인기가 '향기로운 추억'과 '이미 그댄'에 편중됐다면, 2집의 곡들은 골고루 사랑을 받았다. 첫 번째 곡인 '그댄 알고 있나요'는 사랑에 빠진 마음을 곱게 적은 러브레터 같은 느낌이 들고, 이어지는 조동익의 견실한 리듬 편곡과 빛나는 멜로디로 온통 환한 '어느 거리에서'는 스쳐지나가는 주변의 모습들을 기억했다가 적어놓던 나만의 일기장을 보는 듯하다.

타이틀이자 5번째로 실린 김현철이 만든 곡 가운데 최고의 훅을 가진 후렴구의 '자꾸 서성이게 돼'는 크게 히트하진 않았지만, 박학기하면 떠오르는 시그니처송 중 하나로, 메말라가는 대지에 내리는 비처럼 어느 순간, 마음속에 촉촉함이 스며드는 노래이다. 필자 역시도 '어느 거리에서'와 '자꾸 서성이게 돼' 단 두곡만으로도 이 앨범을 충분히 명반의 반열에 올릴 수 있다는 의견에 무조건 찬성한다.

추억이 된 그리운 그 시절을 아련하게 담은 박학기 1집(왼쪽)과 2집.
그리고 2집 역시 1집에 이어 자작곡인 '이제 나홀로'와 '가끔 우울한 날엔' 2곡이 실려 있다. 그리고 조동익, 김현철과 함께 '빛과 소금' 출신 장기호의 곡도 들을 수 있다. 전주가 잔잔하게 흐르며 시작되는 '내 마음의 모습'은 마치 누군가에게 속마음을 말하는 것처럼, 잔잔한 파장의 음정으로 노래를 부른다. 7번째로 실려 있는 '오래된 친구'는 조동익이 활동한 '어떤 날'의 곡으로, 보사노바 풍으로 리메이크해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곡이기도 하다. 특히, 장기호가 만든 '내 마음의 모습'은 애초 박학기가 레퍼런스로 요청한 '빛과 소금'의 1집 수록곡인 '그대 떠난 뒤'와는 정작 별로 닮지 않아서 두고두고 박학기를 아쉽게 했다하지만 그래서 더 훌륭한 곡이라 생각된다. 이 앨범은 1집보다 훨씬 더 알찬 구성으로 만들어 졌지만 그보다 큰 상업적 성과를 가져오지는 못했다.

■ 그의 음악이 전하는 메시지는 '아날로그적 따뜻함'

요즘은 빠르고 편리한 메일과 문자가 있어서 종이에 펜으로 쓴 편지를 받기가 좀처럼 어렵다. 종이와 펜만 있으면 글도 그림도 모두 가능했는데, 이젠 컴퓨터 키보드에 익숙해져 종이에 글씨 쓰는 것이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일부러라도 빈 용지에 그동안 써놓은 글들을 옮겨보곤 한다. 어떤 이는 너무 아날로그적이라며 한마디 하지만, 한번이라도 아날로그적 감성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쉽게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박학기의 노래가 바로 그렇다. 박·학·기, 그는 데뷔한 지 25년차의 베테랑 가수다. "노래가 전하는 메시지는 언제나 따뜻했으면 한다"는 그의 말처럼, 아름다운 노랫말과 따뜻한 초기 명곡들을 지면을 통해 이 겨울의 초입 문턱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반가움과 기쁨에 잠시 설레어본다. 최성철· 페이퍼레코드 대표